책리뷰 패권의 비밀 줄거리 요약
책리뷰 패권의 비밀 줄거리 요약
전세계를 지배했던 국가들의 흥망성쇠의 이유
1.바다 위의 농업 제국 스페인
레콘키스타를 통해 가톨릭 종교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을 영토에서 축출하는 방법으로 영토를 확장한 스페인. 현재의 스페인은 과거 13세기 4개 나라로 이루어졌고, 중심은 카스티야였음.
카스티유가 그동안 이베리아 반도에서 살고 있는 이슬람세력과 유태인들을 개종시키거나 축출시키면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고,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내면서 영토확장을 본격적으로 펼침.
실제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였으나 스페인군사가 현지 영토에서 강력하게 지배하기 보다는 느슨한 형태의 제국을 만들었고, 여기에 복속한 국가들은 일정한 세금을 납부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그러다보니 실제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무역으로 이득을 본 것보다 은, 금의 귀금속채굴로 인한 수송과 노예무역으로 스페인 정부의 재정이 뒷받침. 그러나 영토확장을 통한 세금징수가 주 수입원이고, 영토확장을 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에 쓰이는 자본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는 1480년대 펠리페2세 때 모라토리엄 선언. 그러다보니 세금을 더 늘리게 되고, 세금을 늘리다보니 각 국가들의 원망이 커지게 됨. 그래서 네덜란드의 7개 연맹 국가가 스페인에게 반발함
2.최초의 상업국가 네덜란드
스페인 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해 세계 최초의 확대 재투자 체제를 구축한 네덜란드. 그러나 네덜란드의 패권 기가닝 매우 짧았음. 네덜란드의 중심 지역인 해안 지대의 상당 부분이 해수면보다 낮고, 곡물 경작이 아니라 튤립을 비롯한 상업 작물 경작이 주를 이루고 있음
농사를 짓기에 어려운 영토이다보니, 최대한 국가에서는 농민들에게 세금을 강하게 걷으려는 유인이 없었음. 농민 개개인의 자발적인 기여에 의존했던 개간과 정착으로 완성.
네덜란드는 각 여러도시들을 내륙 하천과 바다로 연결하는 해상 운송망이 발달했기 때문에 도시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발전. 1600년에 이미 네덜란드 지역의 전체 45퍼센트가 도시에 거주. 1497년~1503년 발트해를 드나들면서 통행세를 지불한 선박의 70퍼센트가 네덜란드의 배였고, 그중 78%가 홀란트의 것. 네덜란드는 청어잡이에 열중이었는데 청어를 무역하기 위해서는 소금이 필요, 네덜란드는 소금이 나질 않아서 소금은 포르투칼, 프랑스로부터 공급받음.
네덜란드가 스페인제국과 싸울 때, 처음으로 격발식 소총부대가 나오면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제압. 그러나 네덜란드도 스페인을 꺽고, 세계의 패권을 가졌을 때, 여전히 물류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시아의 물품을 유럽에 가져다 팔면서 성장. 이것도 네덜란드가 군사력에 쓰는 돈이 많아지면서 재정적자 발생.
또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막대한 자본 도우언 능력과 제체 군사력에 바탕을 두고 향료무역 독점,전체 교역액의 56% 향료. 17세기에 다다르면서 향료가 공급과잉형태가 되어서 가격이 폭락하면서 네덜란드의 재정수입이 줄어들게 되었고, 군사력부담은 계속 상존하면서 패권 몰락
3.상업 사회엥서 산업 사회로 18세기 영국
영국이 스페인제국의 전투에서 승승장구 하면서 해상 군사력 장악. 영국이 일찌감치 상업적인 농업이 발전해 귀족과 젠트리가 경제외적인 강제력보다 시장을 통해 경제적 잉여을 수취하는 데 익숙해져있고, 양모산업이 일찌감치 발달해 해상무역을 하게되면 모직물을 팔수 있게됨.
스페인을 꺽으면서 네덜란드와 대립하였고, 20여년 동안 3차례 전투를 하였으나 어느 한 편이 일방적인 승리를 하지 못함.
이러는 동안 서로 군사력을 강화하였고, 네덜란드가 재정적인 부담을 견디지 못해 붕괴. 영국은 이러는 와중에 동인도회사를 만들어 인도의 인력을 활용한 플랜테이션 산업을 하게 되면서 농업과 상업을 주름잡게 됨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왕정이 재정을 담당했고, 왕정의 재정이 붕괴하면서 패권을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영국은 명예혁명을 통해서 왕정과 의회를 분리하였고, 의회를 분리하게 되면서 영란은행이 별도로 설립되어서 영란은행에서 영국 정부에게 펀딩해주는 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영란은행이 부채를 떠안게되는 구조로 변함
이렇게 되면서 군사력 강화를 위해 같은 돈을 빌리더라도 네덜란드는 왕정의 부담이 훨씬 커지는 반면 영국은 영구채, 장기채들을 활용해서 재정지원. 여기에 동인도 회사의 수입이 일정부분 영란은행으로 지급되면서 보증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 매우 큼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기술혁신 일어났고,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좋은 제품들이 생산되었으며 생산성이 매년 상승하였음
그런 결과 임금이 상승하였고, 1775년 런던의 임금은 암스테르담 임금에 비해 1.25배, 비엔나 임금의 4배 수준. 임금 수준이 올라가면서 대중이 기호품이나 사치품까지 구매하는 일이 흔해지면서 수입품은 물론 제조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 그리고 임금이 상승하면서 노동자 스스로 교육과 훈련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사회 전체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고, 이것이 기술 혁신을 지속시키는 지적 기반이 되었음
이런 확대 재생산 과정에서 1900년대 초반에 진입하면서 영국은 미국의 생산시설을 활용해서 돈을 버는 금융업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 금융으로 돈 버는 것이 고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됨. 그렇게 되면서 기술혁신은 뒷전이 되고, 대부분 미국 철도산업, 미국 제조업에 금융으로 지원하면서 영국이 쇠퇴하기 시작하고, 1920년대 들어서면서 전세계 지배했던 나라들이 탈지배되고, 무역에서도 뒤쳐지면서 영국시대가 막을 내리게 됨
4.미국, 산업사회의 형성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업은 버지니아에서 시작. 정착 초기에는 모든 생필품을 수입으로 사용하였으나 플렌테이션이 정착되면서 자체 생산으로 변경. 북부의 제조업과 남부의 플렌테이션농업으로 갈리면서 북부 공화당, 남부 민주당으로 발전
영국이 금융업에 집중을 하면서 영국의 기술자들을 받아들이고, 금융도 받아들여서 혁신적인 공장을 짓기 시작함.
포드는 920달러짜리 T모델을 팔았고, 제조혁신을 통해 5년뒤에 290달러로 가격인하. 이 당시 포드의 노동자들은 일당 5달러씩 받았고, 이는 2달치 월급이면 자사의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구매력으로 당시에 고연봉이었음.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어울러지면서 미국의 대량생산체제가 발달하였고, 세계 1차대전의 재정지원과 물류지원으로 미국의 경기가 호황이었으나 유럽이 전쟁으로 페허가 되면서 미국의 생산품을 소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이는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이 됨.
따라서 미국의 생산성 향상과 기술혁신 만으로 미국이 자강하는 일은 없고,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이 따라와 줘야함. 그래서 마셜플랜이 나왔고, 여기에 사용된 미국채권이 향후 독일과 일본의 경재성장으로 미국이 더욱 지배력이 커지는 계기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