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경선 내용 정리 바이든, 부테제지, 스타이어, 블룸버그

슈퍼화요일 전야의 극적인 판세 전환

1. 일주일 전 까지만 해도 모두들 조 바이든의 정치 생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경선 초반 세 곳의 레이스를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자신의 방화벽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전세를 돌리겠다고 계속해서 주장했지만, 투표를 며칠 앞두고 있었던 토론회 직후 인터뷰에서 그의 얼굴은 지쳐있었고, “자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목소리 그렇지 않았다.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은 바이든이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그냥 승리가 아닌, 압승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바이든이 과연 압승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졌다.

2. 하지만 바이든은 이겼다. 무려 49%에 가까운 표를 얻어 2위 샌더스와는 30% 가량의 차이를 낸, 말 그대로 압승이었다.

그리고 그 승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 유권자의 65%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루어졌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 유권자들은 될 후보 한 사람을 확실하게 밀어주는 전통을 이번에도 이어나갔다. 그들에게는 조 바이든이 “될 후보”였다.

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승리만으로 극적인 판세전환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대한 변화를 바이든의 승리 뒤에 일어났다.

3. 먼저 토요일 밤, 개표결과가 나온 직후 중도후보인 갑부 톰 스타이어의 경선 포기 선언이 나왔다. 바이든과 같은 중도후보가 한 명 줄어들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일요일, 피트 부테제지가 선거운동을 중단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바이든이 중도를 대표하는 후보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큰 장벽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특히 부테제지가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거둔 성적을 생각하면 슈퍼화요일 이전에 포기선언을 한 것은 빅 뉴스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리고 슈퍼화요일 이브인 월요일 에이미 클로버샤가 선거운동을 중단한다는 발표를 했다. 클로버샤는 의미있는 적수는 아니었지만, 중단 발표와 함께 조 바이든을 공개지지하는 선언을 함으로써 본격적인 세 몰아주기 흐름을 만들었다.

4. 그리고 몇 시간 뒤 이번에는 하루 전에 중단선언을 했던 부테제지가 조 바이든을 공개지지하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사흘 동안 일어난 것이다. 아무리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2020년 경선, 대선이라고 해도 패색이 짙던 후보의 운명이 이렇게 바뀌리라고 짐작했던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하루 후면 무려 14개 주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슈퍼화요일 예비선거에 조 바이든은 중도를 대표하는 기수로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 그런데 여기서 잠깐, 부테제지는 왜 패를 그렇게 빨리 접었을까?

선거자금의 절대적인 부족과 자신의 네임밸류의 한계,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후보들이 대거 출전한 이번 경선에서 아이오와, 뉴햄프셔의 성적으로 바람이 일어나기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이 힘들 때는 이제 팀플레이를 해야 할 시점이다. 샌더스가 민주당을 왼쪽으로 끌고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당 중진들은 패닉에 빠졌을 것이고, 바이든을 제외한 군소 후보들에게 빨리 drop out해서 중도표를 바이든에게 몰아주라고 압력을 넣었을 것이다.


물론 사우스캐롤라이나 성적이 나오기 전에는 그 말을 듣지 않았겠지만, 바이든이 거기에서 압승을 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더 이상 버틸 없었을 것이다. 누구의 말처럼 부테제지는 앞으로 대통령 선거에 30년은 더 출마할 수 있는 젊은 정치인이다. 이번에 팀플을 해주고 중진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어차피 안될 경선을 며칠 더 끌고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소득이다.

6.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바이든 vs. 샌더스의 대결 구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급하게 양자대결을 이야기하기 전에 여기에서 먼저 두 명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워런과 블룸버그다.

우선, 진보적인 정치평론가들 중에서 워런에 대한 공격이 나오고 있다. 샌더스가 아무리 선두를 달리고 있어도 전체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는 중도표가 많다. 다만 그들의 표가 갈라져서 샌더스가 1위를 하고 있는 것이지, 단결을 하기 시작하면 샌더스, 워런 지지자를 압도한다.

그런데 스타이어, 클로버샤, 그리고 누구보다 부테제지까지 사퇴를 하면서 중도의 단결을 도모하는데, 정작 샌더스와 사실상 같은 정치적 플랫폼에 있는 워런이 사퇴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비난의 핵심이다.

7. 워런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워런의 과거까지 꺼낸다. 2016년 대선에 출마를 고려했던 워런은 출마를 포기하면서 정치적으로 같은 포지셔닝을 가진 샌더스를 지지하는 대신 자신과 너무나 다른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는 거다. 이를 두고 워런이 자신의 신념(cause)보다 정치적 이익을 앞세운 행동을 했던 것이며, 그런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워런은 경선투표가 시작된 후 의료보험과 소득불평등과 같은 자신이 오래도록 주장해온 어젠다에 더해서 여성문제를 좀 더 강조하는 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왔다. 특히 블룸버그가 토론회에 등장한 후로는 여성을 대표해서 블룸버그에 대한 공격을 사실상 도맡아왔다.

워런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의 경제 어젠다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사람들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워런의 그런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그가 쉽게 후보를 사퇴하고 샌더스를 지지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8. 블룸버그는?

지난 두 번의 토론회에서 이렇다할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바이든도 다르지 않다. 문제는 바이든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승리와 다른 후보들의 공개지지로 언론의 관심이 블룸버그에게서 떠나 바이든으로 이동했다는 거다. 그것도 슈퍼화요일 전야에.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슈퍼화요일은 바이든과 샌더스의 대결”이라고 말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우선 바이든은 선거자금 부족으로 14개 주에서 이렇다할 미디어 홍보를 하지 못했지만, 블룸버그는 미디어 홍보를 퍼부었다. 또한 샌더스는 넉넉한 선거자금과 인력으로 14개 주에 탄탄한 조직을 구성해서 운동을 해왔다. 미국의 선거가 미디어 선거, 조직 선거라면 전자는 블룸버그가, 후자는 샌더스가 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에 크게 확대된 사전선거 때문에 뒤늦게 부는 바람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축소되었다. (워런이 네바다 토론회에서 홈런을 날리고도 표를 얻지 못한 것이 그 때문으로 분석한다).

9. 하지만 그 모든 것도 슈퍼화요일 전야에 일어난 극적인 전세변화의 빛을 바래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 신속한 사퇴와 지지선언이 나온 것은 민주당 중진들의 힘, 혹은 조정능력이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바이든이 내일 좋은 성적을 보여주더라도 그가 최종적으로 대의원 확보에서 샌더스를 이기지 못하면, 대의원 숫자에서 앞선 샌더스를 경쟁전당대회와 슈퍼대의원제도를 통해 뒤집어야 하는 엄청난 정치적인 부담을 져야 한다. 그건 당이 쪼개지는 각오를 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고, 2016년에 공화당도 차마 쓸 수 없었던 방법이다.

내일 있을 슈퍼화요일 예비선거의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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